[기사공유]CEO의 메시지 기술 – S.O.S를 전달하라.

 

소통 능력은 좋은 리더가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이다. 소통 능력을 키우기 위해 소통 수단인 말하기와 글쓰기를 배우려는 기업 최고경영자(CEO)가 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말과 글에서 중요한 건 현란한 기술이 아니다. 안에 뭘 담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일론 머스크(46)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수년간 글로벌 산업계에서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그가 설립한 우주개발 업체 스페이스X(엑스)는 유인 화성 탐사 프로젝트로, 공동 설립한 전기자동차 제조업체 테슬라는 미래형 자율주행차 개발로 각각 주목받는다. 이들 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머스크는 ‘혁신가’라는 호칭과 현실판 ‘아이언맨’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런 머스크의 강연을 한 번이라도 귀담아들은 사람이라면 처음엔 의아해 했을지 모른다. 발 빠른 혁신가·아이언맨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의 말투는 여간 어눌한 게 아니다. 없던 둔재 이미지마저 생길 정도다. 하지만 그의 회사 임직원들은 물론, 개인적으로 그를 모르는 상당수 대중도 그에게 매료돼 호기심을 보이거나 열렬한 지지의 뜻을 내비치고 있다.

머스크를 30시간 이상 독점 인터뷰한 내용 등을 토대로 그의 첫 공식 전기(傳記) [일론 머스크, 미래의 설계자]를 펴낸 애슐리 반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머스크의 명쾌하고 간결한 글은 논리성이 뛰어나 핵심을 정확하게 한 가지씩 짚고 넘어간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해하기 힘든 물리학 개념을 실질적인 사업계획으로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실제 그의 어눌한 강연 곳곳은 어려운 연구개발(R&D) 용어를 쉽게 풀어내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매년 투자자들이 그가 가진 계획의 실현 가능성과 사업성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결국은 천문학적 자금을 투자하는 이유다. 머스크의 사례는 CEO의 말과 글에서 화려한 기술보다 중요한 것이 ‘메시지’, 즉 언중에 담긴 뜻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좋은 메시지는 스스로 호소력이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대통령의 글쓰기], [대통령의 말하기]를 펴낸 강원국 전북대 기초교양교육원 초빙교수는 “말과 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라며 “무슨 내용을 주로 풀어내고자 하는지 그것부터 생각해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 발굴 노하우는 비교적 간단하면서도 쉽지 않다. “멀리서 찾으려 할 필요가 없다. 가까이에서 찾아라. 메시지는 당신 안에 분명하게 있다. 내 관심사가 뭔지 유심히 자신을 관찰하라. 예컨대 내 책장에 어떤 책들이 꽂혀있는지부터 살펴보라. 내가 나를 잘 아는 것 같아도 잘 모른다.”

협업과 공유가 과거보다 중요한 조직 가치로 발돋움한 현시점에서 소통 능력은 유능한 CEO가 갖춰야 하는 필수 덕목 중 첫째다. 좁게는 해당 기업 임직원들에게, 넓게는 사회·경제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CEO들은 보다 전략적으로 소통 수단인 말과 글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메시지부터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유능한 CEO들은 메시지에 세 가지 요소를 공통으로 담고 있다”고 분석한다. 사회적 관심(Social interest), 명확한 철학(Obvious philosophy), 그리고 구체적 비전(Specific vision). 약어로 ‘S.O.S.’다.

 

사회적 관심(Social interest) | 공감대 형성의 필수 조건

소통 능력이 뛰어난 CEO일수록 메시지 안에 사회적 관심사를 담는 데 능하다.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교감하려면 공통된 이야깃거리를 찾아야 하는데, 이때 CEO의 품격을 튀지 않게 보이면서도 듣는(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주제가 사회적 이슈다. 너무 개인적인 관심사는 그것에 별 흥미가 없는 타인이 많을 수 있다는 리스크가 있지만, 만인이 관심을 갖는 사회적 이슈는 그런 리스크가 매우 작다. 공감대 형성이 소통에 있어 왜 중요한 첫걸음이 되는지는 젊은 시절의 연애 경험을 떠올리면 쉽다. 처음 만난 남녀는 공통된 이야깃거리를 찾아내는 데 몰두한다. 그래야 빨리 친밀해질 수 있어서다. 이때 상대방의 자랑이나 내내 듣고 있어야 한다면 더 만나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따분한 자화자찬이나 관심 가질 수 없는 얘기만 늘어놓는 CEO여서는 첫 만남에서부터 퇴짜를 맞을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회에 대해 단순히 비판적인 시각이 아니다.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 인간 사회에 대한 애정, 조금씩 개선하려는 의지다. 무조건적인 비판, 대안 없는 불만의 표출은 꺼리는 사람도 많다. 이런 면에서 리처드 브랜슨(66) 영국 버진그룹 회장은 모범 사례라 할 만한 사업가다. 그는 선천성 난독증을 앓아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17세 때 그룹의 모태인 ‘버진 레코드’라는 작은 레코드 가게를 차려 처음 사업에 뛰어들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그는 사업에 두각을 보였다. 항공업과 호텔업 등 다양한 업종에서 사업을 키우면서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비결은 네트워크 구축. 그는 어떤 부류의 사람과도 쉽게 친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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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의 소통 무기는 왕성하게 갖고 있는 사회적 관심과 그것의 표출이다. 브랜슨은 언제나 사회적 관심사를 메시지에 담는다. “돈은 뭔가를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래서 지구온난화 같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그가 세운 ‘버진그린펀드’는 환경 문제 해결, ‘버진유나이트’는 자선 사업을 목표로 한다. “더 나은 지구를 만드는 기업인이 되겠다”는 그의 메시지는 버진그룹과 그에게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안겨주고 있다.

순다르 피차이(45) 구글 CEO도 사회적 관심사를 메시지 안에 풀어내는 데 능하다. 지난해 열린 ‘구글개발자콘퍼런스’에서 그는 인공지능(AI)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소개한 뒤 “슈퍼컴퓨터와 머신 러닝(AI의 기계학습)이 기후 변화와 의료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신기술 홍보도 자연스럽게 하면서 더 많은 청중과의 공감대 형성을 유도했다. 메시지 안의 이런 사회적 관심 요소는 CEO의 권위적인 면모를 희석시키는 효과도 있다.

명확한 철학(Obvious philosophy) | 하나만 제대로 담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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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 이건희(75) 삼성전자 회장의 이 일성(一聲)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내 산업계에 회자된다. 이 회장은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주요 계열사 CEO 등 임직원 200여 명을 모아놓고 ‘신(新) 경영 선언’을 했다. 지금처럼 해서는 영원히 2류 기업이 되니, 위기감을 갖고 모든 것을 개선해나가자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였다. 당시 이 회장은 세탁기 조립 과정에서 직원들이 규격에 안 맞는 덮개를 즉석에서 칼로 깎는 장면이 담긴 사내방송용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제품의 질적 개선보다 양적 목표 달성을 우선시하는 사내 분위기를 감지, 이를 바꿔야 한다고 봤다.

이 회장은 복잡한 주문을 하지 않았다. 단 하나만 강조했다. 양보다 질, 이제 품질에 집중하자는 얘기였다. 전문가들은 이때 이 회장이 여러 말로 에둘러 지적했다거나, 두 가지 이상의 메시지를 담았다면 효과가 급감했을 것으로 본다. 청중의 주의가 분산될수록 메시지 전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마누라’ ‘자식’ 같은 친숙하되 날카로운, 상징적인 단어 두 개만으로 간명하게 메시지를 전한 것도 주효했다. 신호창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이 회장은 파괴적인 메시지 하나로 삼성은 물론 90년대 한국 사회 전반에서 양보다 질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도록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구체적 비전(Specific vision) | 모든 계획은 세세할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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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는 자신의 계획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담아 전달한다. 지난해 9월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우주비행회의에 참석해 스페이스X의 화성 개척 계획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르면 2022년부터 인류를 화성으로 보내게 될 것이다. 100년 안에 100만 명을 이주시키겠다. 개발 중인 화성행 우주선의 탑승료는 1인당 50만 달러(약 5억5000만원), 탑승인원은 100명, 발사주기는 26개월, 탑승기간은 편도로 80일이다. 기술이 발전하면 이 기간을 30일로 단축, 탑승료도 20만 달러로 줄일 수 있다.”

인류를 화성으로 보내겠다는 그의 원대한 계획은 많은 사람들이 너무도 비현실적이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머스크는 항목별로 숫자를 써서 상세히 제시해, 메시지를 받는 청중들이 꽤 현실적인 계획으로 느끼게끔 이끌었다. 우주선 탑승료, 탑승인원, 발사주기, 탑승기간까지 구체적이다. 이 모든 건 그저 대충 던진 숫자가 아니다. 개발 중인 재활용(발사 로켓의 회수와 재사용) 우주선의 성능과 소재(알루미늄 대신 탄소섬유를 이용), 절감되는 연료비(메탄 연료), 2022년 무렵까지 갖추게 될 것으로 예측되는 기술력의 향상 추이, 화성까지의 거리 등을 면밀히 분석해 나온 숫자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스페이스X는 기존 미국 항공우주국(NASA) 로켓 대비 10분의 1 수준의 비용에 우주를 오가게 할 전망”이라며 “NASA의 화성행 프로젝트는 값비싼 계획으로 논란의 여지를 남긴다”고 보도했다. NASA 계획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한 머스크의 힘은 구체성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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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CEO들은 메시지 안에서 이처럼 자신 또는 자기 기업에 주목해달라는 구원 요청(S.O.S.)을 보낸다. 그러면서 소통한다. 신호창 교수는 이런 PR에 가장 능했던 국내 기업가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꼽는다. 정 회장은 이미 고령이던 1998년 직접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거쳐 북한으로 향해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 신 교수는 “기업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PR 사례”라고 평가했다. 실향민 출신인 정 회장은 개인사(실향의 아픔)를 사회적 관심사와 결부시켜 사회적 공감대부터 형성했고(S), 다음으로 대북 사업을 키워야 한다는 하나의 명확한 경영철학 전파로 국가적 호응을 얻었으며(O), ‘타당성 검토’ 같은 추상적인 계획이 아닌 구체적 접근으로 대북 사업을 성사시켰다(S). 소떼라는 감성적 장치도 주효했다. 정 회장의 최고수 면모는 평소 말하기에서도 드러난다. 그가 입버릇처럼 하던 “해봤어? 해보기나 했어?”라는 말은 기업인의 도전·개척 정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어떤 말과 글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아쉽게도 모든 CEO들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의 경우가 많다. 국내 한 대기업 전직 CEO는 “연초마다 나오는 재계 신년사만 봐도 한국의 CEO들이 메시지 전달과 소통에 얼마나 서툰지를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용이 천편일률적이라 식상해서 와 닿지가 않습니다. 예컨대 ‘헬조선’ 같은 사회적 담론을 녹여내서 오래 일하기보다 짧고 굵게 일하자며 교감한다거나, 미래 사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지 않는다는 것은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임직원 또는 사회와 소통할 의지가 없으며, 새해에 대한 준비가 덜 됐다는 거죠. 고민의 흔적, 뚜렷한 경영철학 없이 단순히 ‘위기다’ ‘혁신해야 한다’는 메시지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니 감흥이 덜할 수밖에요.”

지나치게 많이 쓰는 전문용어도 메시지의 전달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다. 필 사이먼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WP캐리비즈니스스쿨 교수는 “전문적인 내용을 담았더라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소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때론 어떤 말과 글보다 무언의 메시지가 효과적이다. 정주영 회장은 매년 신입사원들과 만나 씨름을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직원들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는 전언이다. 진심을 담아 용기와 희망을 주는 메시지는 짧더라도 굵게 통한다. 한 직장인은 “얼마 전 신년사에서 CEO가 ‘여러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테니 마음 놓고 일에 전념해 달라’고 했는데, 사소한 말 같아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 든든한 말이었는지 모른다”고 했다. 진심 어린 행동과 화법, CEO의 메시지를 한층 빛나게 하는 조연(助演)들이다.

 

> 관련 기사(이코노미스트 1372호, 2017-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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